우울증이 있더라도 남들처럼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정신 질환은 핸디캡일 뿐 정체성이나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세월을 그렇게 흘려보낸 건 병 때문이 아니라 내 선택이었다('선택하지 않는 것'조차 선택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말들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겠지.
세계문학을 그래도 나름 열심히 읽어왔는데, 미국문학이나 독문학은 기초적인 수준이라 민망하다.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닌데 늘 중도에 포기하게 된다. 반면 로망스어문학이나 일본문학은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아하게 됐다. 편식은 좋지 않지만 원래 지식이라는 건 하나를 깊게 파는 것이기도 하니까.
Empathy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온다: 타인의 감정이나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 자신이 타인의 입장이었다면 어떨지 상상함으로써 누군가의 감정이나 경험을 함께 나누는 능력.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습을 통해 후천적으로 이 능력을 얻게 되는데, 엄청난 지적인 작업이다.
『신곡』을 읽기 위한 예비독서에 돌입했다. 지금은 이마미치의 강의록을 보고 있는데 저자가 50년이 넘도록 단테를 공부해온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이 사람은 이 작품에서 무엇을 읽어냈기에 이렇게까지 한 걸까 그 마음이 궁금해졌다. 고전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2주 동안 이대로 세계문학과 멀어지는 걸까 싶어 내심 두려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현실을 일부지만 받아들이고 나니 소설이 이전과는 다르게 읽혔다. ‘낯설게 하기’가 역으로도 작동한다는 걸, 무의미하거나 헛된 시간이란 없다는 걸 알게 돼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