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미술감독(1998-현재), 작가, 영화감독 Production Designer, Director, writer. 🖌저서_ #잔나비를 듣다 울었다 / 식구_냥냥냥멍 https://teapaw.org/t.co/CsYY0zcPYs
Seoul
Joined May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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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성승택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어머니의 가계부》 VIP 시사회에 다녀왔다.
4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해 온 어머니의 가계부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5년 전, 전주 여행길에서 만난 승택 형으로부터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야 승택 형이 나와 동갑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무려 30년 지기 영화 친구인데도 말이다. 이 어이없는 사실을 두고 뒤풀이 내내 안주 삼아 웃었다.
무엇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감격했다.
오랜 시간 촬영감독으로 활동해 온 성승택의 시선이 어느 순간 한 집안의 막내아들의 시선으로 변모한다. 어머니를 향한 질문에는 여전히 막내 특유의 응석과 호기심이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을 통해 성승택이라는 사람을 한 겹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한 어머니의 역사는 곧 한 시대의 역사이며, 성 감독의 어머니는 곧 우리 모두의 어머니다. 상영관을 나서는 사람들의 빨갛게 충혈된 눈을 보며 그들 모두 자신의 부모를 떠올렸으리라 짐작했다.
영화는 단순히 감동을 주거나 지난 기억을 더듬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 각자의 근원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어머니의 기쁨과 슬픔, 행과 불행은 가계부 속 숫자로 기록되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한 사람의 생애가 된다. 그 긴 세월을 지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아들의 질문에 어머니는 머뭇거린다.
어쩌면 행복도 불행도 그저 찰나였을 것이다. 무수한 날들 속에서 서로 뒤섞이고 희미해져, 마침내 ‘없다’거나 ‘모르겠다’는 말로 남는 것.
그것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깊은 감동과 영감을 받은 영화였다. (강추합니다!!)
#어머니의가계부
기쁜 소식. 지난해 이맘때,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말로 할 수 없는 강한 끌림에 (크랭크인을 불과 사흘 앞둔) 독립영화 〈낮은 곳으로부터〉를 덥석 하겠다고 했었다. 실로 오랜만에 내 집에 있던 가구부터 각종 물건들까지 하나둘 현장으로 가져가 세팅하고, 옷장 속 아끼던 옷들도 한 보따리 꺼내 배우님들에게 입혔다. 그야말로 나의 소중한 것들을 아낌없이 꺼낸 영화〈낮은 곳으로부터〉가 올해 도쿄국제영화제 신인작품 경쟁부문에 진출했단다. 배우도, 스태프도 모두 정말 고생 많았다. (김성령 배우님의 겸손과, 사비로 매회 커피 차를 불러 스텦들 몸을 데워 준 그 깊은 배려가 기억에 남는 작품)
【On the Heights】|39th Toky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39thTokyoInternationalFilmFestival #TIFFJP #eiga 2026.tiff-jp.net/en/lineup/f… - @tiff_site
새로 고침의 날. 우드랏에서 망가진 모빌 수리하고, 화분팜에 입원 중인 내 박쥐란 병문안 하고, 비전스트롤에서 커피 한 잔 후, 내 입술 닿은 컵 예뻐서 샀다. at 뙤약볕의 연희동
겨우 생을 붙들고 있는 엄마를 뵙고 왔다. 곡기를 끊었다는 연락을 받고 어제 새벽에 길을 나섰다가 정오가 되기도 전에 삼천포 이모 집에 도착했다. “아이고, 느 엄마 나도 좀 봐야겠다”는 이모는 노인대학에 가셔서 정오에 귀가하신다. 남부는 몹시 무덥고 습했다. 울이모가 공들여 가꾼 정원을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불과 5년 전까지 생생하고 아름다웠던 엄마의 베란다 정원이 문득 생각났다. 엄마는 청개구리 두 마리를 그 정원에서 키웠었다. 한 마리는 청이였고 다른 한 마리는 이름이 뭐였더라? 홍이인가? 하고 있는데 “우리 예삔 으녕이 왔냐” 이모가 화사한 얼굴로 대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이모와 수박을 나눠 먹고 이런저런 근황을 얘기하다 예정된 시간 보다 좀 일찍 엄마 면회 갔다.
엄마는 석 달 전에 뵀을 때보다 더 오그라지고 검다. 이모는 “아이고 세상에 내 동생 불쌍해서 어쩔꼬” 하시며 운다. 엄마는 말도 표정도 얼굴마저 거의 잃었다. 갑자기 온 얼굴을 찡그려 크게 웃다가 금세 시무룩해지다가 눈과 주름을 오므렸다 펴면서 딱 한 단어 ‘몰라’만 옹알이 하듯 한다. 이 낯설고 조금 낯익은 할머니는 분명 날 낳은 내 엄마이고, 이모의 동생인데 딸도 언니도 누구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수줍은 어린 아이처럼 ‘몰라’만 혀 끝에 머금고 있다. 얼굴에 검은 검버섯도 거뭇거뭇 피었다. 내 눈길을 자꾸 피한다. 그런 엄마에게 우리집에 가자, 했더니 곧바로 눈빛을 텅비우더니 허공만 바라보며 ’몰라‘ 말고 ’싫어‘를 향해 도망치다가 영양식에 빨대를 꽂아 드리니 아기처럼 쪽쪽 빨아 삼킨다. “아이고, 장해라 내동생” 하며 이모가 쓰다듬으니 번뜩 생각난 듯, 이모 이름을 크게 부른다. 엄마는 시방 세 살이 됐나보다. 그러니 엄마에게 딸이라고 들이대는 까만 여자가 얼마나 낯설고 무서울까. 이런저런 재주 많던 손을 붙잡고 밥을 먹어, 꼭꼭 씹어, 우물우물 꿀꺽 해야해, 내일도 올까? 하니 고개를 좌우로 흔드신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 고래 뱃속같이 캄캄한 고속도로를 내달리며 엄마의 생애를 생각하고 생각했다. 불쌍한 울엄마 복도 많다, 싶었다. 엄마의 전생애를 곱씹는 나를 뒀으니, 저기 먼 타국에 사는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아들도 뒀으니, 그 아들의 딸, 엄마의 하나뿐인 훌륭한 손녀도 뒀으니 엄마는 곳곳에 있는 것이다. 엄마가 있으니 우리도 있는 것이고, 그러니 우리가 곧 엄마인 셈이고 엄마의 생이 내 생인 것이다.
자정이 되어 집에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