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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방 조직이 몸집을 불리던 시기에 운좋게 입사해 지금껏 구급차를 타고 있는 사람입니다. 2020년에는 제게는 좀 과분한 ‘국가직 공무원’ 지위를 얻게 되었고요. 거기에 대해 제대로 감사인사도 전하지 못한 마당에 귀한 추천의 글까지 써주시니 참 민망할 따름입니다.
최선을 다해 생명을 구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 자신도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십시오. 명령하셨던 걸 기억합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던지는 이들에게 그처럼 큰 응원이 있을까요. 우리 소방관을 영웅이니 히어로니 추켜세우기보다, 먼저 심장이 뛰는 사람으로 여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백경 드림.
@moonriver365
잘생긴 남자애가 걸어왔다. 딸이 얼굴을 붉히더니 내 뒤로 숨었다. 잘생긴 남자애가 말했다.
“야, 같이 놀자.”
싫다고 해. 싫다고 하라고.
“...그래.”
딸은 잘생긴 남자애를 쪼르르 따라갔다. 둘은 뭐가 재밌는지 정글짐 위에서도 까르르, 원통 미끄럼틀 안에서도 까르르, 술래잡기하다 자빠져도 까르르였다. 까르르. 까르르. 벤치에 앉아 한참 그 꼴을 지켜봤다. 그러다 애 피아노 학원 갈 시간이 됐다.
“이제 가자.”
“아빠, 조금만 더 놀면 안 돼?”
“늦었어.”
손잡고 놀이터를 나서려는데 딸내미 발이 질질 끌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잘생긴 남자애가 물먹은 솜 같은 얼굴로 딸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애에게 말했다.
“따라와.”
내가 앞장서고 두 아이가 우물쭈물 뒤따랐다. 나는 우리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그 집에 아이들을 데려갔다. 가서, 종업원도 통하지 않고 곧장 사장님께 말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전부 주세요.”
붕어빵 스무 개와 오뎅 열 개를 포장해서 반절은 잘생긴 남자애에게 쥐여주었다. 이만큼 재력을 과시했으니 다시는 내 딸을 넘보지 못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가족을 버팀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가족은 벼랑이다. 거기엔 추락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가 있다. 아내의 우울이 아내를 집어삼키지 않을지, 아이들이 아프지 않을지,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지 않을지, 부모님이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건 아닐지. 까마득한 높이에서 바라보는 현실은 어찌나 아찔한지 뱃속을 호두알처럼 오그라들게 만든다. 그러다 휘잉, 바람이 불고 벼랑 끝의 내가 바깥으로 밀려나는 때가 온다. 그리고 그 순간 꼼짝없이 추락하리라 믿었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른다. 깨닫는다. 아, 나에겐 원래 날개가 달려 있었구나.
공무원은 모든 일을 문서로 처리한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다.
직원 사망 알림
동료의 죽음도 여섯 글자로 간편하게 정리가 된다. 딸깍. 문서를 클릭하니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다.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애가 둘이었나, 셋이었나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죽었다. 가장 중요한 죽음의 원인은 거기 쓰여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쉬이 짐작한다. 순직이 아니라면. 출동벨이 울린다.
먼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원룸 건물 앞에서 대기 중이다. 2층으로 이동한다.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지만 열리지 않는다. 건물주의 동의를 받고 강제로 문을 개방한다. 복도에 어색한 자세로 엎어져 있는 남자가 보인다. 남자의 뒤통수는 새카맣다. 입고 있는 츄리닝도 새카맣다. 그 위로 날아다니는 초파리들도 새카맣다. 새카맣다. 새카맣다 못해 심연이다. 심연을 너무 오래 바라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죽음을 꿈꾸게 된다.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 소방서 밖으로 나온다.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간다. 커피도 새카맣다.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자 컵의 온기가, 뺨을 때리는 11월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오래 서 있는다.
나는 살아있다.
살 것이다.
구룡마을 화재에 투입된 여성 소방관이 뭇매를 맞고 있다. 현장에서 얼굴에 검댕을 묻힌 채 돌아다니는 사진 때문이다. 역시나 기다렸다는 듯 꿀방관이니 쑈방관이니 댓글이 달린다. 여성 소방관은 현장에 투입되지 않는다는 억지 주장도 펼쳐진다. (만약 연출 사진이라면) 조직이 시키는 대로 한 걸 왜 욕하냐는 댓글엔 조직이 시키면 사람을 죽여도 무죄냐는 터무니없는 대댓글이 달린다. 그러나 그중에 그 꿀 빨러 쑈 하러 소방서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또는 소방서에 입사했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아마도 우리 조직에 한방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한방이란 힘이 있단 의미가 아니라 ‘한방에 갈 수 있다’는 의미다. 꿀 빠는 건 부럽지만 죽기는 싫은 심리랄까.
사진의 진위여부를 따지고 싶은 것도 아니고,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일합니다 티를 내는 조직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마디는 꼭 하고 싶다. 지금 욕먹는 동료도 분명 ‘한방’을 각오하고 일하리란 사실이다. 그런 각오 없는 소방관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우리가 부러우면 당신도 소방서에 들어오시라. 사무실엔 공짜 원두커피가 있고 탕비실엔 컵라면도 있고 출동 없을 땐 은근슬쩍 의자를 젖히고 눈 붙일 수도 있다. 24시간만 나와 있으면 48시간을 쉴 수 있고 일반직 공무원보다 급여도 세다. 더해서 일일 누적 4회부터 책정되는 건당 4000원짜리 출동가산금까지 있다. 주저하지 말고 어서 오시라. 그냥 딱 하나, ‘한방’만 각오하면 된다. 그러면 이 모든 게 당신에게 주어질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동네에 오래 다닌 치과가 있다. 거기 선생님은 얼핏 봐도 환갑은 넘어 뵌다. 오래 입어서 해진 가운을 걸치고, 담배를 태우는지 내 입을 손으로 열 때마다 은근 담배 냄새가 난다. 10년 전쯤 충치 때문에 이빨을 때울 일이 있었는데 ‘금으로 하는 게 좋지 않냐’고 묻는 내 말에 선생님은 그냥 싼 거로 하고 떨어지면 다시 때우라고 말했다. 때운 부분은 아직까지 잘 붙어 있다.
며칠 이빨이 욱신거려서 오랜만에 치과에 갔다. 머리가 더 허옇게 센 거 빼고는 선생님은 지난번과 같은 모습이었다. 엑스레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선생님이 한 마디 했다.
“여기 사랑니는 뺄게요.”
“예? 꼭 빼야 하나요?”
“싫으면 말고.”
“예?”
“약 먹고 괜찮으면 안 와도 돼요.”
처방해 주신 약을 먹으니 사흘 만에 아픈 게 사라졌다. 사짜 아우라를 풍기는 그가 사실은 동네에 숨은 고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사랑니는 왜 뽑자고 했던 걸까.
심심했나.
아이를 가져 본 사람들만 이타적이 된다는 말엔 동의할 순 없지만, 아이를 갖는 일이 나처럼 덜 된 인간에게 이타심을 가르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아이를 낳는 건 단순히 인구 수를 불리는 행위일뿐 아니라 인류가 서로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지 않게 만드는 강력한 안전장치기도 하다. 혹자는 아이의 동의 없이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 고통받게 만드는 게 비윤리적이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이 그래서 얼마나 윤리적일까를 떠올리면 내 머릿속엔 희망적인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지금 수준으로 약자를 도울 수 있을까? 걷지 못하는 사람을 부축하고 굶는 사람에게 밥을 먹일 수 있을까?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이에게 굳이 손을 내밀까? 손해보고 인내하며 사랑할 수 있을까? 그걸 가르쳐주는 가장 뛰어난 스승이 존재하지 않는데.
그러니까 아이는, 아이들은 세상의 빛이 아닐까.
부모들도 시작은 그들의 욕심이었을지언정 세상의 구름 틈새로 빛을 피워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가끔 사춘기 첫째와 말다툼을 할 때면 아이는 꼭 이렇게 따져 묻는다. 그럴 거면 왜 나를 낳았어요.
왜 나를 낳았어요. 거기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고 싶은 건 순전히 내 욕심이다. 내 딸은 나의 이기심으로 인해 태어났다. 아이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서, 아이로 인해 삶이 더 풍요로워질 것 같아서, 외롭지 않기 위해서, 예뻐서, 사랑하고 싶어서. 앞으로 태어날 세상에서 제일 예쁜 너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낳았다고? 솔직해지자. 나는 그렇게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다. 그냥 아이를 갖고 싶어서 가졌을 뿐이다. 그게 나의 죄다.
죄를 지은 나는 즉시 큰 착각을 했음을 깨달았다. 아이는 인형이 아니었다. 울고 떼쓰고 젖을 빨다 다시 울고 토하고 시도 때도 없이 똥을 쌌다. 정비소에 맡겨서 뚝딱 고쳐지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끊어지는 허리를 부여잡고 잠 못 드는 아이를 품에 안아 달랠 때, 나는 삶의 중심이 나에게서 아이로 옮겨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반강제로 이타적인 인간이 됐다. 그래서 왜 나를 낳았냐고 묻는 아이의 말에 백 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네가 태어나기 전까지 난 철저히 이기적인 인간이었으므로. 네가 온 뒤에야 비로소 난 인간다워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죄인이다. 험한 세상에 마음대로 너를 불러들인. 그래서 가끔 네 입에서 ‘행복하다’란 말을 들을 때면 참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다.
장강명 작가님의 아내는 지난해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다. 뇌에서 발생하는 종양 중 가장 공격적이고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의 하나라고 한다. 소설에는 작가의 현실과 같이 소설가 주인공과 독서 모임 플랫폼을 운영하는 아내가 등장한다.
소설의 중심은 절절한 사랑의 드라마가 아니다. 그보다는 눈앞의 현실이다. 마무리되지 않은 부동산 계약,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 119에 신고해서 병원에 가기까지의 과정, 다양하고 복잡한 검사들. 무엇보다도 내 아내의 머리에 시한폭탄이 설치됐다는 생경한 현실. 주인공 안시찬은 그런 현실을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쓴다. 마치 작가 본인이 노트북을 열어 소설을 완성할 수밖에 없었듯이.
책의 첫머리는 ‘환자 가족들에게’라는 말로 시작한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문을 두드리면 열리리라 하셨습니다, 하는 식의 값싼 위로는 여기 없다. 대신 크나큰 고통 앞에 신음하는 이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겼다. 지금 이 순간, 현실을 서성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살이 많이 빠졌다. 두 달 동안 103킬로에서 88킬로가 되었다. 거울 볼 때도 좀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 아침 샤워를 하고 안방 욕실 앞, 아내의 큼지막한 화장대 거울 앞에 섰다. 아내가 그걸 보고 한 마디 했다.
“아침부터 나체로 서 있구 그래?”
“우리.”
“우리 뭐.”
“나체인 김에 잡체나 한 번 만들까!”
아내가 문을 닫고 나갔다.
요거 안 통하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꾸역꾸역 사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소아과 의사들이 그렇다. 애가 아파서 동네 소아과 병원만 가 봐도 알 수 있다. 똑닥인지 틱톡인지 어플로 진료 시작 직전부터 요이 땅 환아를 받기 시작해서 현장 접수한 인원까지 더하면 암만 생각해도 점심밥 먹는 시간 외에는 종일 쉴 틈이 없다. 똥 눌 시간도 없을 것이다. 타 과에 비해 의료수가가 높은 편도 아니고, 병원 진료가 이러저러한 처치로 연계되는 일이 적어 수익성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아과를 택한 건 아이들이 좋아서도 있겠지만 단언컨대 ‘내가 아니면 누가 해’라는 마음가짐 때문일 것이다. 모든 필수 의료 분야의 의사들이 그렇듯이.
얼마 전 경찰이 아주대 소아응급의료센터를 압수 수색했다. 지난 7월에 발생한 사망 사건을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응급의료센터장의 말에 따르면 당시 60여 분의 소생술 끝에 환아가 사망하고 보호자가 112에 신고한 직후 형사들과 과학수사대가 응급실에 찾아왔다고 한다. 사망한 아이가 응급실을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던 다른 응급 환자들의 진료가 중단된 채로 교수는 경찰과 면담을 해야 했다. 경찰이 의사들을 범죄자 취급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을 보존하고 수사를 시작하는 게 경찰의 원칙이므로 그들 또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세심함이다. 태도의 세심함을 따지려는 건 아니고 매뉴얼의 세심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소아과 진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 더군다나 분초를 다투는 소아응급실에서 수사 준칙이 곧이곧대로 적용된다면 의료인들의 사기를 꺾는 것은 물론 환아들의 상태가 실시간으로 악화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원칙으로부터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다면 특수 상황에 적합한 세부 원칙을 신설해야만 한다.
아이들의 목숨이 오가는 일이다. 그 정도는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월요일 출근하니 책상에 근조리본이 놓여 있다. 입사 10년 차. 작년 한 해만 제외하고 해마다 꼬박꼬박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적게는 한 번, 많게는 세 번씩. 처음엔 요령이 없어 삐뚤빼뚤 달았는데 이제는 한 번에 똑바로 달 수 있다. 그 익숙함이 슬프다.
커피를 마시던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응가 할 거야?”
“어떻게 알았어?”
아내가 놀라서 묻는다. 그냥 안다. 설명할 길이 없어 어깨만 으쓱한다. 우리는 나가서 점심밥을 먹기로 한다. 메뉴를 정하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오랜만에 거기 가자고 말하니 아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오랜만에 거기.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옷을 대충 걸치고 나오는데 둘 다 청바지에 검정 티셔츠 차림이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아내가 자기 밥 반 공기를 내 국밥에 말아 넣는다. 당신은 반 공기 나는 한 공기 반. 그렇게 먹으면 둘이 먹는 속도가 대충 맞아 떨어진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우리만의 적정 속도. 옆 테이블엔 노인이 홀로 앉아 국밥을 먹고 있다. 그도 멀리 떨어진 누군가와 속도를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혼자 국밥 먹을 날이 오겠지. 그때는 밥을 한 공기 더 시켜서 반 공기만 덜어 먹어야겠다.
어제 김진석 소방위의 죽음을 두고 누군가 말했다.
- 소방관 순직하면 가족은 로또 맞은 거임. 소방공무원 6만 명이 조의금 모으면 10억임.
소방서에서 일하다 죽으면 전국의 소방공무원들이 십시일반 조의금을 모아서 전달한다. 공무원이 평생 일해도 모을 수 없는 큰돈이다. 지방에 아파트 한 채는 얻을 수 있고 남은 건 아이들 대학 교육까지 시킬 정도는 된다. 그래서 우리끼린 죽어도 꼭 불 끄다 죽어야 한다는 말을 농담처럼 한다. 그러나 그 농담은 사실 농담이 아니라 주문이다. 뜨거워도 들어가야지. 죽어도 불 끄다 죽어야지. 불 끄다 죽으면 내 가족은 걱정 없으니까. 용기를 내게 만드는 주문.
당신 말처럼 우리는 긁으면 100퍼센트 당첨되는 로또다. 덕분에 없던 용기를 쥐어짜서 현장에 뛰어들 수 있다. 죽어도 불 끄다 죽어야지. 주문을 왼다.
영웅 아닙니다. 영웅 취급 해주시는 거 너무 감사하지만 솔직히 좀 민망합니다. 출동 없을 때는 다른 일도 많이 하지만 몰래 새로 올라온 웹툰을 보기도 합니다. 사무실에는 원두 커피 기계도 있는데 저는 그걸 하루에 한 세 잔은 마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실 커피 중독이거든요.
사명감이 있긴 한데 아주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거구요. 저는 사실 밥벌이 하려고 소방서에 다닙니다. 애가 둘입니다. 학원비도 많이 들고 식구들이 죄 식성이 좋아서 식비도 많이 듭니다. 구급차가 출동을 나가면 하루 누적 네 건째부터 ‘출동가산금’이란 명목으로 3000원을 챙겨주는데 저는 그게 참 좋습니다. 열세 건을 나가면 삼만 원이 되거든요. 모으면 살림에 많은 보탬이 됩니다.
그래서 늘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출동 없을 땐 농땡이도 피우고 하루에 커피를 세 잔이나 마셔서요. 그리고 구급출동을 나가면 환자 생각도 하지만 동시에 삼천 원을 떠올려서요. 그게 다 세금인데 넙죽넙죽 받아먹는 주제라서 죄송합니다. 그게 어느 분들의 눈에는 혈세를 빨아먹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할 말 없습니다. 빨대 맞습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상처가 되긴 하네요. 저도 사람이니까요.
살면서 나 좋다고 따라다닌 여자가 몇 있었다. 가장 최근은 여덟 살 때 동네 통닭집 딸이었다. 과거 나의 장래 희망은 브랜드를 막론하고 무조건 통닭집 자제와 결혼해 삼시 세끼 통닭을 먹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너 나랑 한 마리 하지 않을래?” 라며 앙큼한 플러팅을 하면 이겨내기 어려웠다. 나는 자주 그녀의 손을 잡고 통닭집에 따라가 그녀의 엄마가 튀겨주신 통닭을 얻어먹었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사람은 통닭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나이가 되었고, 그녀의 몸에서 내도록 풍기던 향긋한 기름 냄새도 머릿속에서 잊혔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느 날 통닭 하나만으로도 삶이 충만했던 시절이 그리워 30여 년 만에 그 집을 찾았다. 내부의 조명을 조금 손보긴 했지만 간판은 그대로였다. 머리만 허옇게 세고 하나 달라지지 않은 그녀의 엄마가 같은 자리에서 통닭을 튀기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후라이드 두 마리 포장이요.”
“네에.”
“그런데 사장님.”
“네?”
“따님은 잘 계시나요?”
사장님은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얼굴로 나를 보셨다.
무 더 덜란 말도 못하고, 통닭만 들고 냅다 집으로 돌아왔다.
10월이 되면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나랏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참 부끄러웠던 기억이다. 몇 년 전 10월의 어느 날, 수백의 사람이 수천의 사람의 무게에 깔려죽는 사건이 있었다. 그걸 두고 어떤 이들은 악마의 축제에 놀러 갔다가 죽었으니 자업자득이라며 고소해 하기도 했다. 그와는 별개로 나는 내 나라가 희생자들의 죽음을 오롯이 애도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이튿날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 ‘근조’ 글자가 보이지 않도록 리본을 뒤집어 가슴에 달라는 공문을 받았다. 나는 리본을 바로 달았다. 그리고 이후 며칠간 너는 왜 리본을 뒤집어달지 않느냐는 질책을 들어야만 했다.
이게 나라냐!
지금 이 순간도 그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한 마디 하자면 나라가 국민의 죽음을 쉬쉬하던 그때, 그건 나라가 아니었다.
결혼기념일에 생애 처음 뮤지컬을 보러 갔다. 보통은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에서 감동을 받을 텐데 나는 조금 엉뚱한 포인트에서 눈물이 났다. 뒤통수였다. 무대 전면, 아래로 푹 꺼진 자리에서 연신 팔을 흔들던 지휘자의 뒤통수. 그리고 무대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의 뒷모습을 우러러 혼신의 연주를 하고 있을 오케스트라의 뒤통수가 가슴을 때렸다.
사는 것도 꼭 뮤지컬 같다. 무대 위 몇몇 빛나는 얼굴들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보여도 결국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무대 아래 각자의 연주를 하는 무수한 뒤통수들이다. 그러니 뒤통수 가운데 하나임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겠다. 그건 내가 오롯이 앞을 보고 나아간다는 증거니까.
아내에게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 말도 못 했다. 고개만 끄덕였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평소처럼 아파트 앞 산책로를 걸었다. 길가 실개천에서 시린 물 냄새가 났다. 여름에 네 식구 함께 산책하면 저기 뛰어들고 싶어 하는 애들을 뜯어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고 보니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아내는 암만해도 그 사람과 결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바람이 휭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정말 춥다. 옆에서 꿈꾸듯 걷는 당신을 보며 생각했다. 자주 보는 리트리버 한 마리가 맞은편에서 휘적휘적 걸어 왔다. 개가 입을 열자 짖는 소리 대신 휴대전화 알람 소리가 들렸다.
다섯 시 오십 분. 아내는 어제 오랜만에 한잔해서인지 다리 사이에 이불을 둘둘 말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내 몸은 새벽 공기에 차게 식어 있었다. 다리 사이의 이불을 빼내려는데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꿈쩍도 안 했다. 그래서 그냥 사람과 이불을 통째로 껴안았다. 밤새 자란 턱수염을 볼에 문대자 아내가 괴로운 듯 꿈틀거렸다. 통쾌한 복수였다.
사랑은 품이 든다. 인내하고 배려하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반면에 혐오는 그럴 필요가 없다. 상대방을 향해 마음껏 배설하고 나 잘났다며 으스대면 그만이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진정성 있는 정책을 통해 국민에게 사랑을 전하기 보단 전방위로 혐오를 부추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혐오가 쉽고, 빠르게 전염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애가 흐릿한 사람들을 타겟으로 온갖 형태의 혐오를 주입하고 인간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박탈한다. 나아가 사람들 사이에 퍼지는 혐오를 양분 삼아 제 배를 불리는 동시에 이 나라 전체를 저열한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런 정치인들에게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도 그들은 당신의 심장에 빨대를 꽂을 생각뿐이다. 한 순간도 당신의 편이었던 적 없다. 그들은 오로지 스스로의 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