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기억9.
갑자기 전철이 멈춰섰다. 빠르게 하차하는 승객들에 밀려 올라선 플랫폼에서 잠시 현기증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곧이어 눈 앞의 객차가 빠르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지진임을 깨달았다. 그날 화렌에서는 몇 사람이 사망했다고 한다.
타이페이 기억4.
디화제에서 우연히 마주친 추석(?) 행진. 영화에서 보던 길바닥 폭죽과 관우. 그리고 복을 비는 사람들. 거리 곳곳의 사당과 절에서 마주치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참 아름다웠다.
타이페이 기억3.
장제스 독재시기의 언론자유운동에 관한 기획전시 중 한 장면. 반정부 신문사에 백색테러로 불을 질러 언론인이 타죽은 사무실을 재현했다. 까맣게 숯이 된 편집자의 흉상과 철사만 남은 침대와 생전 사진. 전시 장소가 국부박물관이라서 더 착잡했다.
페퍼로드 retweeted
1980년대 대구 최고인기 만두가게는 영생덕이나 태산만두가 아니라 동성로 '신춘방' 이었다. 가게 위치도 대구백화점 맞은편이라 진짜배기 황금상권. 신춘방에서 찐교스 먹으면서 테이블마다 놓인 '사주'가 들어있는 투명공 100원씩 넣고 뽑는게 새해 연례행사였다.
십 수 년 전 '장희빈묘에 조공을 바친 뒤 학춤을 추면 애인이 생긴다'는 속설을 검증하려 했던(기사 링크) 어느 여인은 지금은 박사가 되었고 중앙일간지에 칼럼을 쓰고 여전히 솔로라고 한다.
m.ohmynews.com/NWS_Web/Mobil…
500장 가지고 타툴 일인지
부모님이 작은 평수로 이사 가시면서 엄마가 아빠의 평생 보물인 LP 500장을 싹 다 버리라고 선포했고, 아빠는 그럼 나 이사 안 간다고 배째라로 맞섰음
아빠는 대학 시절 청춘 때부터 LP를 모아온 골수 수집가였음
예전 50평 본가 거실 한쪽 벽면 전체가 전부 아빠의 맞춤 LP 수납장이었음
엄마는 지난 30년 동안 그걸 먼지나 푹푹 쌓이는 백해무익한 쓰레기라고 불렀고, 아빠는 자기 인생이 담긴 보물이라고 불렀음
정작 그 음악을 재생할 턴테이블은 10년 전에 고장 난 뒤로 수리도 안 해서 식구 누구도 LP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음
자식들이 다 독립해서 나가자 부모님이 살던 50평 아파트를 팔고 25평 아파트로 줄여서 이사 가기로 결정을 내렸음
새로 이사 갈 집 거실엔 그 거대한 LP 수납장이 들어갈 공간이 전혀 나오지 않았음
엄마가 결단을 내리고 정리 통보를 했음
"LP는 이삿날 전에 전부 버리든지 중고로 팔아 치우든지 알아서 해"
아빠는 그날부터 일주일 동안 엄마랑 눈도 안 맞추고 말 한마디 안 섞었음
남매 단톡방에서 긴급 가족회의가 열렸음
여동생은 집 좁아지는데 당연히 정리해야 한다는 엄마 편이었고, 남동생은 아빠의 평생 추억을 왜 다 버리냐는 아빠 편이었음 나는 딱 중간에서 눈치만 봤음
결국 내가 인터넷으로 중고 LP 출장 매입하는 전문 업체를 알아보기로 했음
그냥 폐기물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보다는 중고로 팔아서 용돈이라도 만지면 아빠도 서운함이 좀 덜하지 않겠냐고 설득했음
엄마는 "그 먼지 덩어리 쓰레기를 요즘 세상에 누구 사겠냐"며 콧방귀를 뀌었음
을지로 쪽에 있는 유명 LP 수집 상점 사장님한테 아빠 LP장 사진 몇 장을 찍어서 보내드렸더니, 사장님이 사진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져서 주말에 직접 집으로 찾아오겠다고 했음
주말에 LP 가게 사장님이 본가로 방문했음
아빠는 소파 구석에 앉아 팔짱을 꽉 낀 채 불쾌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노려보고 계셨음
사장님은 장갑을 끼고 LP를 한 장씩 정성스럽게 꺼내 커버 상태랑 판알을 형광등 불빛에 스캔하듯 비춰봤음
무려 두 시간 동안이나 판을 하나하나 검수했음
검수하는 내내 사장님이 혼자 "와... 이 판이 아직도 있네", "상태 미쳤다" 하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음
엄마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리둥절해했음
LP를 다 살펴본 사장님이 드디어 계산기를 뚜드리며 영수증을 두드렸음
그러고는 소파에 앉은 엄마 쪽을 지그시 바라보며 금액을 불렀는데, 그 사장님이 제시한 매입 금액은 무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