ぼざろ見てギターを買い、ゆるキャン△でアウトドア用品を買い、聖地巡礼で南極に行くオタクまでいる国でそれはちょっと
漫画の影響でカジュアルに始めるきっかけになる事はいくらでもある
レジスタ論争で実際の接客でオジに言い寄られたという話をしてる人は、それ自体が逆説であることに気がついてるのか?
レジスタという漫画が生まれるより先にそういうオジさんはいて、それは漫画とは関係なく存在している。
つまりレジスタを批判したりキャンセルしたとしても現実には何も影響がない。
もともとそういうヤツはいるから。
なんのフィクションに触れなくても若い女性に性的な目を向ける男性はいるし、それで行動に出る男性もいる。
作品が描かれる以前から犯罪者はいる。
それはちゃんと糾弾され、実際に犯罪を犯したら捕まって裁かれるべき。
フィクションはフィクションでしかない。漫画一冊に犯罪を犯させるほど人を洗脳する力はない。
タメ口は日韓で使われ方が違いすぎるから、基準語くらいに整えて欲しい。
Replying to @kangdol39
日本の皆様へ、この写真は韓国の日本語基礎教材でひらがなとカタカナを学んだ直後の次のページの写真です。 ご覧のとおり、基礎的な単語とともに敬語から学び、私の経験ではため口はむしろ中上級レベルから学び始めます。 この文化的・教育的な違いが互いに誤解を生んだようです
・全人間に無礼な人はいる
・最も手近な配慮の場合はある
・場面がわからないとなんとも言えない
今知ったからには気を付けようと思う。けど全部の場所に私は居ないのに、日本人の文化にまで文句を言われるの悔しい。
もう少し「お互い様」になって欲しいという要求はそんなに過剰ですか?
이것의 댓글들을 종합해 보니 보인 흥미로운 특징
추상적으로 반말을 이야기할 때는 '괜찮다', '귀엽다', '고맙다'는 반응(반어적인 표현일 수도 있지만)이 많지만, 구체적인 인간관계와 상황을 떠올리기 시작하면 조건과 주의사항이 등장한다.
태도가 나쁘면 안 된다. 무례해서는 안 된다. 직장에서는 주의해야 한다. 일본어 실력이 좋다면 경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반말이 무조건 친근함의 표현이며 외국인을 위한 배려라는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한 것 아닌가?
일본인들 자신도 반말이 친근함의 표현인지, 무례한 행동인지를 구별할 때 여러 조건을 고려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반말에 관대한 일본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사람마다 언어적 감각은 다르며, 일본인 중에도 정중한 표현보다 격식 없는 대화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관용을 근거로 일본인 전체의 언어적 감각을 단정하거나, 반말에 불쾌감을 느낀 한국인들에게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
'나는 불쾌하지 않다'는 말은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그러므로 당신도 불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상대방의 경험을 부정하는 주장이다.
더구나 자신의 언어적 감각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상대방이 느낀 불쾌감은 문화적 무지로 치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일방적인 태도가 아닐까?
사람은 문장의 어미만 듣고 상대방의 의도를 판단하지 않는다.
표정과 억양, 목소리, 태도, 상황, 관계, 그리고 대화의 흐름까지 복합적으로 받아들여 판단한다.
【 반말을 사용했다고 반드시 무례한 것도 아니지만, 반말을 친근함이나 배려라고 설명한다고 해서 실제로 무례했던 행동이 친절한 행동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
결국 이 댓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인들이 반말에 관대하다는 단순한 결론이 아니라, 일본인들 역시 반말을 판단할 때 다양한 맥락을 고려하고 있으며 그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한국인이 똑같이 맥락을 고려하여 불쾌감을 표현하면, 그것은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이 되는 것일까?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고 싶다면,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적 감각만을 기준으로 상대방의 경험을 부정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